집에서 튀김을 하기란 번거롭고, 힘들고, 손이 많이 가고,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고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쉽지 않다. 나한테는 상당히 어렵다고 느껴지는 튀김 요리. 튀김 할 때 기름 온도를 맞추는 것부터 이미 어려움에 봉착한다. 예전에 한번 말레이시아에 살 때 닭튀김을 한번 해보겠다고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처참하게 실패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또 실패하란 법은 없으니, 이번에는 가라아게에 도전한다. 물론 결과는 성공적, 만약 처참하게 실패했으면 아마도 포스팅 따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래 사진만 봐도 이미 성공한 그림이다.
심야식당 시즌2의 제2화에서 등장하는 가라아게. 어릴 때부터 무언가 남에게 빼앗기며 살았지만 그게 뭔지 모르고 살아가는 한 여자. 어릴 때 항상 가라아게를 오빠에게 빼앗겼다며 심야식당에서 가라아게를 주문한다. 그리고 마스터는 맥주를 마시지 못하는 여자에게 하이볼을 만들어 권하며, 가라아게를 같이 내어준다. 자기 자신을 찾아,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는 모습으로 변해가며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 무언가를 빼앗기지 않는 밝은 여자가 되어간다. 이제 더 이상 오빠에게 가라아게를 빼앗길 일은 없을 테지.
심야식당에 나오는 가라아게를 제대로 공부를 안 하고 재료를 사러 갔더니, 토마토와 장식용 채소를 사 오지 않았다. 어쩌겠나 그냥 있는 대로 하고, 다른 걸로 대체를 하는 수밖에. 심야식당 시리즈인 만큼 하이볼도 같이 한다. 집에 선토리 위스키는 없으니 먹다 남은 잭다니엘로 대체해서 만든다.
재료는 사이드용 양배추와 가라아게 위에 살짝 뿌리고, 하이볼에 넣을 레몬, 마늘, 생강가루, 후추, 소금, 간장, 달걀, 밀가루, 감자전분, 생닭과 넉넉한 기름이다. 양배추는 가늘게 채를 썰어서 물에 한번 담갔다가 빼서 준비하고, 필요에 따라 드레싱도 같이 준비해 주면 좋겠다. 레몬은 즙을 짤 때 쓸 몇 조각만 썰고, 하이볼에 넣을 레몬도 한두 조각 썰어서 준비한다. 닭을 양념할 때 쓸 마늘은 잘게 다져주고 간 마늘을 사용해도 그게 상관없을 것 같다. 마늘향이 좀 더 센 걸 원한다면 오히려 간 마늘이 더 효과가 좋을지도 모르겠다.
아무 생각 없이 가라아게도 닭튀김이니까 그냥 생닭을 잘라서 가져가면 되겠지 너무나 편안하게 여기며, 한국의 치킨처럼 바로 튀길 생각만 했다. 집에 와서 심야식당 영상을 보는데 이게 웬걸... 닭들이 뼈가 없다. 그렇다. 가라아게는 순살 닭튀김이었던 것이다. 뼈를 발골해야 한다. 생닭 사서 마디마디 끊어 분해만 해봤지 살만 도려내는 뼈 발골은 해본 적도 없는데, 이걸 어쩌나. 별 수 있나, 해야지. 잘라진 닭들을 하나씩 잡아 뜯고 발라낸다. 그래도 다행인 건지 닭살이 생각보다 물러서 뼈와 잘 분리가 된다. 물론 근막이나 힘줄이 연결되어 있는 부분들은 잡아당기면 살이 다 부서지니 잘 봐가면서 칼로 끊어가며 작업해 준다. 닭날개와 목을 제외하고는 다 발라내었다. 다음부터는 발골을 하더라도 그냥 통닭으로 사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다 잘라서 오니 닭뼈들이 너무 잘게 부서져 있어서 그걸 발라내느라 더 힘들었다. 닭뼈는 잘 부서지고 잔뼈들이 날카롭기 때문에 발골하면서도 손을 조심해야 한다.
손질된 닭은 시장에서 산 8000원짜리 그렇게 크지 않은 닭 한 마리 분량이다. 중량을 재어보지는 않았지만 대략 500g~600g 정도 되지 않을까. 닭들을 모아 양념을 시작한다. 다진 마늘 1큰술, 생강가루 1/2작은술, 후추는 취향껏, 소금 1 작은술, 간장 2큰술을 넣고 잘 버무려준다. 잡내도 잡고 간도 배이게 하기 위함이니 잘 버무려준 뒤에 30분 정도 재워둔다.
재워진 닭에 달걀 하나를 넣고, 밀가루 깎지 않고 2큰술 반, 감자전분은 깎지 않고 1큰술 반을 넣는다. 조물조물 잘 섞어서 고기에 속속들이 빠진 부분 없이 충분히 잘 묻혀준다. 튀김옷이 많이 두꺼울 필요는 없으니 닭 크기와 고기 양에 따라 조절해서 반죽을 해주면 되겠다. 반죽이 뭉쳐있는 부분 없이 골고루 잘 묻게 버무려주면 완료.
웍에 기름을 넉넉히, 아주 넉넉히 부어준다. 튀김을 하려고 마음먹었으면 기름 부어주는 것에 겁먹지 말자. 다시 쓰면 된다. 물론 기름을 거름망으로 한번 거르는 거는 귀찮지만 그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튀김을 하는 것 아니겠나. 기름 온도는 확실하게 올려주고 닭을 넣어주도록 하자. 튀기는 온도를 확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젓가락을 팬 바닥에 꽂았을 때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걸 확인하면 된다. 기름에 닭을 넣고 나서는 너무 성급하게 뒤집을 생각은 하지 말고 약간의 인내심을 갖는 게 좋겠다. 너무 빨리 뒤집어 버리면 붙어있던 튀김옷이 다 벗겨져서 안 붙을 수가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황금색 튀김옷이 입혀지면 꺼내어 트레이에 올려 한 김 식혀준다.
가라아게를 튀기는 정석은 두 번 튀기는 것이다. 180도에서 1차로 한번 튀기고 건져내어 한 김 식힌 후 온도를 약간만 더 올려 한번 더 튀겨낸다. 두 번째 튀겨내는 과정에서 바삭해지게 되니 꼭 두번 튀겨주도록 하자. 어차피 쓰는 기름 제대로 쓰는 게 좋겠다. 한번 건져내어 식히는 동안 거름망으로 기름을 정리해 준다. 두둥실 떠다니는 반죽 찌꺼기들을 제거해 주어야 탄맛이 덜 나고, 기름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다. 한 김 날라간 닭들을 다시 한번 기름에 넣어주고 바삭하게 튀겨준다. 튀기는 시간을 제대로 재어보진 않았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한김 식히는 시간까지 대충 25분~30분 정도였던 것 같다. 튀기는 시간만 보면 대충 20분 정도인 것 같은데, 색을 보고 튀겨야 하는데 시간이 그렇게 의미가 있나 싶다. 참고용 정도로만 봐주면 되겠다.
완전히 튀겨진 가라아게들을 플레이팅 해본다. 기름이 어느 정도 빠진 후 플레이팅 하는 게 좋겠다. 기름이 흐르는 상태로 바로 나가야 한다면 밑에 기름을 흡수할 뭔가 깔아 두는 게 가라아게가 눅눅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가지런히 가라아게를 쌓아주고 옆에 채 썰어둔 양배추를 놓은 후, 기호에 맞게 레몬즙을 뿌릴 수 있도록 레몬을 두 조각 정도 놓는다.
색깔이 너무 기가 막히게 나와서 누군가 이거 보정했다고 생각했을 수 있지만, 내 포스팅의 모든 사진들은 무보정 사진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가장 좋은 모습인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처음 블로그 시작했을 때, 사진 보정 생각 안 해본 건 아니다. 그런데 요즘 카메라의 기본기가 너무 좋아서 사진을 찍어보면 보정 따위 굳이 필요한가 싶다. 물론 원판 불변의 법칙이라고 기본적으로 요리도 잘 되어야겠지만 말이다. 왜 이렇게 자화자찬인지 이해가 안 되겠지만, 이 가라아게를 먹어보니 자화자찬이 절로 나온다. 내가 했지만 너무 맛있다. 내가 한 음식에 엄청 냉랭한 편인데, 와... 이건 진짜 어마어마하게 맛있었다.
가라아게 한 입에 하이볼 한 모금. 아, 좋다! 좋아! 이곳이 심야식당이구나! 닭 발골부터 기름 처리까지 정말 전쟁이었지만, 그 전쟁이 끝나고 나서 찾아온 맛의 평화는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동안 집에서 튀김이라는 걸 하는 게 정말 부담스럽기 그지없는데, 이번에 한번 해보고 나니 그동안 내가 왜 안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새로운 주방 친구 웍도 있으니 좀 더 튀김 하기가 한결 수월 할 테니 종종 해 먹는 걸로 해야겠다. 이미 다 먹고 없는 가라아게가 지금 이 포스팅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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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n_shin_k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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