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n's Crumbs

이안의 부스러기들 ㅡ 걸어가며 흘린 부스러기들을 담아놓는 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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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8 #크리스피오겹살밥 #샤오로우판 #烧肉饭 #동남아식 #집밥 #말레이시아 # 가정식

무심한일상 2023. 4. 5. 09:00

말레이시아에 있을 때 자주 갔던 푸드코트가 있는데, 푸드코트라고 하기엔 뭐 한 게 치킨라이스 파는 집과 샤오로우, 차슈를 파는 집 둘뿐이다. 거기서 파는 시우육판 烧肉饭 도 같이 팔았다. 시우육은 광둥어, 샤오로우는 중국어 발음으로 같은 음식이다. 여기서 파는 샤오로우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한국에 들어와 가끔 생각나 어떻게 해 먹을 수 없을까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찾았던 게 육식맨 유튜브의 크리스피 삼겹살 레시피였는데 번번이 실패다. 내가 원하는 느낌이 도저히 나질 않아서 한참을 그냥 그렇게 있다가, 이번에 말레이시아 처갓댁에 갔는데 웬걸... 장모님이 레시피를 알려주신단다. 냉큼 감사함다를 외치며 영상을 하나하나 찍어가며 배웠더랬다. 그렇게 배운 레시피 한국에 왔으니 해봐야지. 시장에 가서 통 오겹살을 1kg 샀다. 해보자 거의 완벽한 샤오로우 烧肉. 

 

 

加油!!

 

아주 만족스러웠던 샤오로우판.

레시피를 배우고 나니 생각보다 그렇게 복잡하지 않지만, 꽤 중요한 포인트들이 많다. 고기를 다듬는 방법, 양념 비율, 껍질을 바삭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 고기를 건조하는 타이밍, 오븐에 넣고 고기가 익히는 타이밍 등등. 과정 자체는 복잡하지 않지만 꼭 지켜야 할 방법들이 있다. 고기는 반드시 껍질이 있는 고기를 산다. 껍질을 먹어야 하는 음식이니 당연히 껍질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육점 가서 삼겹살 달라고 얘기하면 잘못 사 올 수도 있으니, 확실하게 오겹살을 달라고 해야 한다.

껍질이 붙어있는 통오겹살. 모양 잡아 다듬어주기.

준비한 통오겹살을 원하는 모양으로 가지런하게 성형해 준다. 사온 모양 그대로 해도 상관은 없지만, 처음 혼자 해보는 요리이니 모양 잡아 예쁘게 잘해보고 싶어서 각을 잡아줬다. 각을 잡아두면 완성된 후 잘랐을 때 예쁘게 플레이팅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웍에 고기를 뒤집어 껍질을 물에 살짝 데쳐준다. 물을 껍질만 잠기게 조금만 해놓고 약불에서 데치도록 한다.

물은 껍질만 잠길정도로.

데쳐진 껍질은 오그라들며 단단해지고 고기의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데친 고기는 물에 한번 씻어주고, 껍질에 남은 털들을 정리해 준다. 오븐에 넣어 구울 거라 결과물에서 크게 보이거나 하지는 않지만 왠지 찜찜하니 잘 다듬어준다. 핀셋이 있다면 아무래도 좀 더 수월하다. 물에 한번 씻은 고기는 키친타월로 물기를 잘 제거해 준다.

껍질 정리하기

고기를 전체적으로 일정하게 익히기 위해 고기 밑면도 평평하게 손질을 해준다. 가능하면 뼈 부분은 제거를 잘해주도록 하고, 떼어낸 고기는 다른 요리에 사용할 수 있으니 절대 버리지 않는다. 이왕이면 완성되었을 때를 생각하며 고기를 잘 살펴서 정리해 주는 게 좋겠다. 나도 이런 통고기 성형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 뭐라 더 알려주며 얘기하기가 어렵다. 앞으로 좀 더 자주 사서 해봐야 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지지 않을까.

완성되었을 고기를 상상하며 정리해주기.

이제 껍질에 구멍을 내어준다. 고기 포크, 고기 연육기가 있으면 한결 수월할 걸 알고 있어서 인터넷으로 사려 했지만, 제 때 도착하는 물건이 없어서 못 사고 결국 집에 있는 꼬챙이로 하나하나 찔러준다. 껍질에 최대한 많은 구멍을 내어주어야 나중에 껍질이 예쁘게 부풀어 오른다. 자기 손 찌르지 않게 조심할 것. 엄지에 구멍 날 뻔했다. 고기를 많이 찔러주고 나면 껍질에서 기름이 나오기 시작한다. 키친타월로 한 번씩 제거해 준다.

가능하다면 고기 연육기를 준비하자.
껍질에서 나오는 기름 제거해주기.

양념, 럽을 발라줄 수 있도록 고기를 갈라준다. 완성된 후 이 갈라준 선을 기준으로 고기를 커팅할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먹을 크기를 생각하며 일정하게 등분해서 커팅해 주는 게 좋겠다. 이때 중요한 건 껍질까지 자르지 않고 고기 부분까지만 잘라야 한다는 것. 껍질은 다 굽고 나서 한 번에 커팅한다.

고기 갈라주기.

양념, 럽을 만든다. 소금, 설탕, 오향분, 백후추를 섞어서 럽을 만들고, 원한다면 여기에 마늘가루나 양파가루를 추가해서 럽을 만들어도 좋다. 나는 오리지널 맛을 해보기 위해 다른 추가양념은 하지 않고, 이미 얘기했던 소금, 설탕, 오향분, 백후추만으로 럽을 만들어 발라주었다. 럽은 껍질을 제외한 고기 부분에 전체적으로 문질러서 발라준다. 고기를 가른 사이사이에도 잘 집어넣어서 발라주는 게 좋겠다.

럽만들어 고기부분에 발라주기

럽을 발라준 고기를 트레이에 올리고 건조할 준비를 한다. 고기를 칼로 갈라주었기 때문에 양쪽에 고기가 흘러내릴 수 있는데, 잘 정리하여 모양을 잡아주고 껍질이 위로 오도록 뒤집어준다. 혹시 이때 껍질 위로 흘러나온 기름이 있다면 키친타월로 제거해 주도록 한다.

트레이 위에 올리고 건조 준비.

건조하기 전에 식초와 베이킹소다를 섞은 소스를 껍질 위에 발라준다. 흥건하게 바르지 않고 조금씩 발라 흡수시키듯이 발라주도록 한다. 구멍 난 껍질에 흡수되며 나중에 껍질을 익힐 때 더 바삭바삭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고 고기 안쪽을 부드럽게 해주는 역할도 동시에 한다.

식초와 베이킹 소다.
만든 소스를 껍질에 발라주기.

이렇게 고기 건조 준비가 끝났다. 집에서 고기를 건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는 냉장고이다. 냉장고만큼 건조한 곳이 없기 때문에 트레이에 올린 고기를 그대로 넣어 최소 24시간 냉장고에서 건조하도록 한다. 이왕이면 자주 열지 않는 냉장고가 좋을 것 같아 김치 냉장고에서 자리를 만들어 건조했다. 여기서 고기를 잘 건조해야 수분 없는 껍질이 되어 더 바삭바삭한 사오로우가 될 수 있다.

 

냉장고에 건조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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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밥을 먼저 한다. 말레이시아에서 내가 즐겨 찾던 사오로우판의 밥은 생강향이 살짝 도는 간이 되어있는 맛밥이다. 딱히 밥에 이름이 있는 건 아니라서. 나는 앞으로 그냥 맛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말레이시아식 덮밥이니 쌀은 당연히 안남미, 날아다니는 쌀로 한다. 거기에 소금, 치킨스톡, 생강가루, 식용유를 넣었다. 어디서 배운 정식 레시피는 아니고, 그 가게의 밥맛을 생각하여 임의대로 넣은 재료이다. 아마 모든 재료를 준비할 수 있었다면, 시판 치킨스톡 대신 닭뼈를 고아 치킨스톡을 만들고, 식용유 대신 볶은 닭기름을 사용하며, 편 썰은 생강 한 두 조각을 추가했을 것 같다. 

밥에 넣을 양념 만들기

안남미로 밥을 할 때 한국쌀로 밥을 하듯 물을 맞추면 질고 맛없는 밥이 된다. 익긴 익었는데 설익은 밥의 느낌이라고 할까. 어차피 밥맛도 개인취향인 거라 안남미로 밥 하는 걸 도전하신다면 여러 번 밥을 해보며 자신한테 맞는 밥맛에 맞게끔 물 높이를 찾는 게 좋겠다. 나는 항상 날아다니는 밥을 좋아하기 때문에 거의 1:1에서 살짝 더 높게 하여 밥을 한다. 

쌀 씻고 양념물 부어 밥하기

이제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내어본다. 약 30시간이 지난 고기의 상태이다. 수분이 빠지고 건조된 모습이다. 소금과 설탕으로 만든 럽으로 고기를 문질러뒀기 때문에 따로 고기를 떼어내거나 하는 부분은 없다. 건조되는 정도를 판단할 때 껍질을 우선적으로 보고 판단한다. 고기 쪽 수분은 구우면서 빠지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껍질 쪽은 수분이 남아있으면 바삭해지지 않는다. 냉장고의 상태와 온도에 따라 건조되는 정도와 속도가 다를 테니 껍질 상태를 위주로 봐주면 되겠다. 

껍질이 건조되었는지 확인할 것.

오븐에 넣을 준비를 한다. 오븐을 160도로 예열해 두고, 그 사이 포일을 준비한다. 고기가 들어가고 브러시만 넣을 수 있을 정도만 여유를 남겨준다. 포일 테두리의 높이는 껍질보다는 살짝 낮게 해 준다. 껍질의 모든 부분은 뜨거운 공기가 항상 닿아있어야 하고, 고기 부분은 고기에서 흘러나온 수분 때문에 건조해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껍질 쪽은 건조하고, 고기 쪽은 수분을 유지하여, 껍질은 바삭하게, 고기는 촉촉하게 만드는 방법이 되겠다.

호일 접시 만들기.

오븐에 넣고 1시간을 기다린다. 중간중간에 체크해 주어 고기 기름이 흘러나왔다면, 그 기름을 껍질에 한번 더 발라준다. 한 시간이 지난 후에 꺼내어 고기상태를 확인하고, 200도 오븐에 30분을 더 해주었다. 200도 오븐에 들어가기 전에는 포일이 모여있는 기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160도라는 온도가 그렇게 높은 온도가 아니기 때문에 포일에 고여있는 것은 100% 기름이 아니라 수분도 같이 있기 때문에 바르게 되면 바삭한 기포가 잘 올라오지 않는다.

중간에 꺼내어 기름 바르기.

200도 오븐에서 30분이 지난 후 꺼냈을 때 기포가 완전히 올라오지 않아서 포일을 빼고 고기만 트레이에 올려 230도 최고 온도에서 8분 정도 더 구워줬다. 이렇게 하니 기포가 올라오면서 완전히 바삭한 형태가 되었는데, 다음에 할 때는 220도로 10분 정도 설정해서 해봐야겠다. 고기의 높이와 모양이 일정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전체가 일정하게 기포가 올라오며 바삭해지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모든 부위가 맛은 좋았다. 다만 일정하게 구워지지 않은 게 아주 쪼끔 불만이라면 불만.

200도시 오븐에 굽기
완성된 사오로우의 껍질. 영롱한 황금색!

보기만 해도 우와 소리가 나오게끔 기포가 잘 올라왔다. 칼로 껍질을 한 번씩 긁어본다. 어마어마하게 바삭바삭한 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힌다. 계속 긁게 되는 마성의 소리. 껍질이 닳아 없어지기 전에 그만두고 밥에 올릴 양념을 만들어본다. 샬롯, 쪽파, 생강, 마늘을 썰어 웍에 넣고 기름을 넉넉하게 두른 후 약한 불에서 지글지글 튀겨준다. 이때 쓰는 기름은 일반 식용유도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고기를 굽고 흘러나온 수분기름을 다 섞어 넣어 향미유를 만든다. 돼지기름이 들어간 양념, 얼마나 맛있을까.

밥에 두를 양념 만들기.

볼에 간장, 설탕, 물, 굴소스를 넣어서 섞고 만든 향미유를 넣어서 섞어준다. 노릇하게 튀겨진 마늘과 쪽파, 샬롯은 따로 건져내어 밥 위에 얹어 반찬처럼 하나씩 집어먹거나 밥과 같이 섞어 먹으면 맛있다. 고기를 잘라준다. 시장에서 산 고기도 꽤 좋았던 것 같다. 고기와 기름이 적당한 비율로 예쁘게 박혀있다. 앞으로 계속 그 정육점을 가게 될 것 같다. 가게가 너무 작아서 처음 보면 고기가 있긴 있는 건가 싶지만, 친해지기는 좀 더 쉽지 않을까, 몇 번 더 가보면 알게 될 거다.

내가 했지만 잘했다는 느낌.

고기를 자를 때마다 기분 좋은 바삭거리는 소리가 난다. 다만 이제 여기 고기를 자를 때는 높이가 좀 있는 칼로 대고 칼등을 쳐서 팍팍 한 번에 끊어주듯 잘라야 한다. 칼을 밀어 썰어낸다고 생각하면 껍질이 고기에서 다 분리되니, 완성된 사오로우를 망치지 않으려면 한번 끊어줘야 한다. 칼등을 자주 쳐줘야 하니 중식도가 칼등이 두꺼운 건가 싶다.

고기 잘라서 플레이팅 하기.

플레이팅 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먹어보지도 않았는데, 이건 맛있을 수밖에 없는 거라며 와이프와 둘이서 계속 빙구웃음을 지으며 플레이팅을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포인트들이 있어서 그렇지 한번 해보고 나면 시간 오래 걸리는 것 외에는 별다를 게 없는 음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사 먹는 이유는 그만큼 시간 들여 음식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아서겠지.

 

사오로우 한조각 바사삭.

바삭바삭한 껍질은 이미 맛있다. 기름기 가득한 껍질을 구웠으니 얼마나 고소할는지 상상해 보면 그저 행복해진다. 고기도 속까지 적당하게 잘 익었다. 간도 너무 짜지 않고 적당하다. 오향분 때문에 생기는 특유의 향이 고기 잡내는 날리고 풍미는 올린다. 바운싱 느껴지는 살코기를 씹고, 부드러운 지방이 씹히며, 피날레로 바삭한 껍질이 삼연타를 친다. 날아다니는 밥에 기름양념을 섞어 튀긴 마늘, 쪽파를 올려 한 수저 먹고 나면 완벽한 반찬이 된다. 여기서 메인은 돼지고기 밥은 반찬.

 

'의식주' 중에 역시 제일은 '식'이다. 살기 위해 먹는 밥을 먹는 사람이 있고, 먹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다. 살기 위해 밥을 먹는 사람보다는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이 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다만 가능하다면 맛있는 요리를 내가 직접 하며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아직도 먹어봐야 할 음식들은 산처럼 쌓여있고, 배워야 할 음식도 수만가지다. 한국 엄마와 말레이시아 엄마, 두 엄마에게 배워야할 음식들이 많다. 유산이라는 게 특별한 게 아니라 이런 게 유산이지 뭐. 그렇게 나는 언젠가 내 2세에게 이것들을 공유해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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