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집에서 돈가스를 참 많이 해 먹은 것 같다. 어릴 때는 어머니께서 종종 돈가스를 해주시곤 했다. 정육점에 가면 돈가스용으로 손질을 해놓은 고기들이 한쪽에 쌓여있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그걸 사다가 집에서 밀계빵으로 해서 튀겨주셨다. 성인이 된 후 사실 집에서 내가 직접 돈가스를 해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한번 직접 튀겨본다. 돈가스란 음식, 보기도 많이 보고, 먹기도 많이 먹었지만 냉동돈가스를 먹거나, 밖에서 사 먹은 것뿐이다. 이번에 이 돈가스를 직접 해보며 느낀 건, 연육기를 사야겠다는 것, 이 장비 욕심은 끝이 없다.
튀긴 돈가스를 한번 더 업그레이드해서 심야식당 시즌1의 제6화의 소재로 사용된 가츠동을 하기로 한다. 일식 덮밥 중에서도 규동은 일식조리사 실기 항목이라 연습 겸으로 여러 번 해본 적이 있지만 가츠동은 처음이다. 내가 직접 튀긴 돈가스로 가츠동이라니, 얼마나 맛있을까 기대가 된다. 튀김에, 달달한 소스에, 밥이라니... 참을 수가 없다.
심야식당의 에피소드들은 하나하나가 차분해서 좋다. 지나치게 극적인 것도 없고 감동도 찬찬히 스며들게 찾아온다. 가츠동 에피소드에서는 시합에서 이기는 날엔 가츠동을 먹으러 오는 권투선수가 식당에서 가족이 될 인연을 만나게 되는 잔잔한 이야기이다. 이 에피소드는 가츠동을 주문한, 미래의 권투선수 가족에게 마스터는 오야코동을 주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오야코동은 닭과 달걀이 들어가 부모와 자식이 함께 있는 뜻으로도 쓰인다는데, 앞으로 가족이 될 이들에게 마스터가 주는 선물이었던 모양이다. 오야코동도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해봐야겠다.
심야식당 따라잡기인 만큼 영상을 주의 깊게 본다. 가츠동 위에 올린 풀때기가 뭔지 한참을 봤는데, 보고 또 봐도 이건 고수가 분명하다. 일본도 고수를 먹나?, 가츠동에 고수를 올려?, 원래 그런 건가?, 의심이 계속되어 다시 생각해보고 했지만, 화면에 보이는 이건 고수다. 운이 참 좋은 건지 마침 집에 고수가 있네.
재료를 준비한다. 내가 준비한 재료는 고수, 양파, 돼지 등심, 달걀, 밀가루, 빵가루, 소금, 후추, 설탕, 간장, 미림, 잘된 밥이다. 고수를 썰어주고, 소스를 만들 양파를 채 썰어준다. 돈가스용 고기를 먹고 싶은 크기로 잘라 앞뒷면을 칼등으로 때려주고, 칼끝으로 표면에 구멍을 내어준다. 표면의 구멍은 안쪽을 잘 익도록 해주는 역할도 하고, 고기를 부드럽게도 만들어주며, 기름 풍미가 사이사이 스며들 수 있도록 한다. 고기는 등심을 준비했다. 일본에서는 어깨살을 쓴다고 하던데, 다음에 정육점에 가면 사장님한테 물어봐야겠다. 어깨살이라는 부위가 생소해서 말이다.
밀계빵을 준비한다. 밀가루, 계란물, 빵가루이다. 밀가루에는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섞어준다. 돈까스만 먹는 거라면 돈가스용 고기에 미리 밑간을 해서 고기 자체를 간간하게 했을 텐데, 지금 할 가츠동은 간이 있는 소스에 돈가스를 담가야 하기 때문에 고기 밑간은 하지 않았다. 이건 개인적인 추측으로 시험 삼아 해 본 것이니, 고기 밑간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면 그렇게 해도 좋을 것 같다. 다음에 할 때는 나도 고기 밑간까지 해서 해보는 걸 해야겠다. 일단 이번에는 튀김옷에 간을 하는 것으로 결정.
지금 생각해 보니, 밀가루만 사용하고 전분가루는 안 넣었는데 다음에는 전분가루도 같이 섞어서 해봐야겠다. 밀가루만 해서 튀겨도 맛은 충분하지만, 전분가루를 넣으면 더 바삭한 식감이 생기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뭐... 어차피 소스 속에 빠지고 나면 소용이 없을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해보면 알겠지.
일단 고기를 밀, 계, 빵 순서로 묻혀서 돈가스 옷을 입혀준다. 밀가루는 너무 두껍지 않게, 계란물은 골고루 잘 붙어 있도록, 빵가루는 빈틈없이, 여러 번 뒤집어주면서 골고루 옷을 고기 위에 붙여준다. 그렇게 고기와 밀계빵 옷들이 밀착될 수 있도록 잠시 휴식을 취하게 해 주자.
기름을 붓는다. 기름이 아깝다 생각 말고 붓는다. 기름이 적으면 될 튀김도 잘 안되니 가능하면 돈가스를 넣었을 때 절반 이상은 잠기게 부어준다. 남은 기름은 번거롭지만 튀김이 끝난 후 거름망으로 걸러 기름은 꼭 재사용하는 게 좋겠다. 버리면 환경에도 안 좋고, 낭비이니까 말이다. 기름 온도를 충분히 올리고 천천히 넣어준다. 기름 온도를 확인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은 빵가루를 뿌려서 떠오르며 지글지글 튀겨지는 걸 확인하거나, 젓가락을 팬 바닥에 꽂았을 때 기포가 보글보글 활발하게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이 중 하나만 확인해도 얼추 튀겨도 된다는 뜻이다. 가장 좋은 건 전자온도계로 체크하는 거겠지만. 가지고 있는 집이 얼마나 될까. 사실 전자온도계는 정말 사고 싶은 물건 중 한 개다.
돈가스가 잘 튀겨지면 건져서 채반 트레이에 받쳐주어 기름을 충분히 빼주도록 한다. 바삭함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이니 꼭 해주도록 하자. 모든 튀김류들에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과정이다. 부침부터 시작해서 치킨, 감자튀김 등등 기름에 들어갔다 나오는 건 꼭 이 과정을 거쳐주는 게 좋겠다. 스테이크가 레스팅이 꼭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돈가스를 건져 낸 후 가츠동을 만들 팬을 올려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팬 사이즈가 내가 사용할 덮밥 그릇 사이즈와 비슷해야 한다는 점이다. 완성되면 팬 위의 가츠동을 그대로 부어 덮밥 그릇에한 번에 올려야 한다. 원래대로라면 일본에서 사용하는 돈부리 전용 팬을 사용해야 하지만, 집에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사고 싶다. 갖고 싶다. 참는다.
원형 팬에 다시 육수를 붓는다. 다시 육수는 우리들이 흔히 사용하는 디포리 다시 백을 찬물에 하루정도 담가놓아 만들었다. 찬물에서 천천히 육수를 만들었기 때문에 훨씬 진하고 비린맛도 없다. 내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다시 육수에 설탕, 간장, 미림을 넣고 설탕이 잘 녹을 수 있도록 저어주면서 끓여준다. 물이 끓어오르면 채 썰어둔 양파를 넣고 바글바글 끓여서 양파를 익혀주도록 하자.
양파가 다 익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 돈가스를 소스에 바로 넣기 위해서 미리 준비한다. 트레이 위에 있던 돈가스를 등분해서 잘라주고 양파가 거의 다 익은 것처럼 보이면 잘라둔 돈가스를 그대로 옮겨 가츠동 소스에 넣어준다. 식은 돈가스가 데워질 때까지 한소끔 끓여주고, 계란물을 풀어서 부어주도록 한다. 부어준 계란물을 휘젓거나 섞지 않고 그대로 익혀준다.
계란을 원하는 만큼 익히는데, 너무 많이 익히면 소스가 다 졸아들어 덮밥 위에 한 번에 붓기가 어려워질 수 있으니 익힘 정도를 적당히 판단하도록 한다. 계란이 어느 정도 익으면 불을 끄고 뚜껑을 덮은 후, 덮밥 그릇에 밥을 준비하여 가츠동을 얹어준다. 일반 팬을 사용하는 집에서는 팬에서 덮밥 그릇으로 옮기는 게 생각보다 어려울 수 있다. 나도 이걸 실패하면 다시 촬영을 다시 해야 하나 생각하며 했는데, 그래도 다행히 괜찮게 된 것 같다. 옆에 조금 흐르긴 했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고수를 얹어서 장식해 준다. 오랜만에 해보는 돈부리에 처음 해보는 돈가스,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일본식 덮밥 소스맛에 감동이 몰려온다. 그리고 혹시, 심야식당을 보신 분들 중 화면에 있는 풀때기가 다른 풀때기라면 꼭 댓글 부탁드린다. 어쨌든 고명으로 올린 고수가 생각보다 가츠동과 잘 어울려서 놀랐다.
달달한 간장소스에 달걀, 부드러운 양파, 잘 튀겨진 돈가스까지 완벽한 한 그릇 음식이다. 집에서 해 먹는 가츠동의 좋은 점이라면 돈가스의 두께를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점이 좋다. 두꺼운 돈가스를 밥 위에 얹어 먹는 게 생각보다 호사롭고 행복한 일이라는 건 아마도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지 않을까.
@plates_n_crumbs
@ian_shin_kj
'Plates_n_Crumbs' 카테고리의 다른 글
#061 #타마고산도 #계란샌드위치 #卵サンド #심야식당 #일식 #집밥 (0) | 2023.04.04 |
---|---|
#047 #오코노미야키 #オコノミヤキ #베이컨 #양배추전 #일식 #집밥 #안주 (0) | 2023.04.03 |
#059 #돼지불백 #백종원의요리비책 #따라잡기 (0) | 2023.04.01 |
#043 #버섯파스타 #양식 #집밥 (0) | 2023.03.31 |
#055 #무전 #배추전 #성시경레시피 #성식영 #따라잡기 (2) | 2023.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