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n's Crum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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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돼지내장볶음덮밥 #중식 #집밥

무심한일상 2023. 2. 8. 09:00

가끔은 냉장고 안에 당최 뭘 해 먹어야 할지 곤란한, 남은 재료들이 있다. 애초에 먹을 만큼 사는 게 불가능한 재료들, 이를테면 돼지 내장이라던가…... 지난번에 돼지국밥의 건더기로 먹고 남은 내장이 냉장고 안에 남아있었다. 육수는 오래전에 이미 다 먹어치워서 없고, 남은 내장을 뭘 해서 먹을까 고민하다가 시간이 이렇게 지나 버렸다. 더 놔두면 그대로 곧 사망할 것 같은 냄새가 나기 직전이다. 어쩔 수 없다. 냉장고 안에 있는 걸 털어서 뭐라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돼지 내장 덮밥

중국에 있을 때, 살던 동네에 자주 가던 동네 식당이 있는데, 그 곳에서 주문하는 메뉴는 샤오차오로우판 小炒肉饭, 쏸라지자 酸辣鸡杂, 투도우치에즈 土豆茄子 이 세 가지뿐이었다. 각각 메뉴가 뭔가 하면, 매운 고추를 썰어 돼지고기와 검은콩장을 같이 볶은 요리, 마늘종과 닭똥집을 신맛, 매운맛이 나도록 볶은 요리, 감자와 가지를 간장 양념으로 볶은 요리이다. 중국의 볶음 요리는 화력 자체가 달라서 그런지 순식간에 요리가 완성되지만 그 맛이 깊다. 중국에서 사는 동안 그 맛을 따라 하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결국 완전히 똑같은 맛은 못 찾은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을 더듬어 그때 그 동네에서 먹었던 스타일의 볶음 요리를 해보기로 한다.

생강은 편썰고, 마늘종은 5cm 정도 길이로 자르고, 마늘은 칼 옆면으로 뭉개어 놓고, 돼지 내장은 물 반, 술 반에 넣어 끓여 잡내를 날린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둔다. 이렇게 하고 나면 기초 공사 완료. 웍을 센 불 위에 올리고 기름을 충분히 둘러 온도를 올린다. 편으로 썰어둔 생강을 넣고 볶는다.

 

기름에 생강 튀기기

기름에 생강향이 배일정도로 튀기듯이 잘 볶아준다. 어릴 땐 생강 냄새가 그렇게 독하고 매워서 무지하게 싫어했었는데, 지금은 생강 익는 냄새가 향기롭기만 하다. 중국에 사는동안 익숙해진 것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어 입맛이 바뀐 게 큰 것 같다. 새삼스럽게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구나를 느끼게 하는 생강향이다. 생강을 충분히 볶으면 마늘을 넣어 같이 볶는다.

 

마늘 넣어 튀기기

생강과 마늘을 달달 볶아, 나이든 사람이 절로 끌려오게 하는 좋은 향기가 나기 시작하면, 돼지 내장을 쏟아 넣고 가장 센 불에 웍질로 볶기 시작한다.

 

내장 넣어 볶기

볶으면서 백후추를 뿌리고, 황주를 두 차례 정도 부어가면서 잡내도 날리고, 술의 단맛도 입혀둔다. 술이 날아가며 돼지내장에서 뽑아지고 남은 자작한 국물은 볶아진 생강향, 마늘향, 내장의 쿰쿰한 향, 술의 단맛이 모두 들어있는, 흰쌀밥에 아주 잘 어울리는 양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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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넣어서 볶아주기

술이 좀 날아갔다 싶을 때 즈음 물 3스푼, 국간장 2스푼, 소주 3스푼, 설탕 1티스푼, 오향분 1/2티스푼을 섞은 양념을 부어 볶는다. 아무리 열심히 볶는다 하더라도 휴대용 버너는 중국의 그 화구와 같을 수 없기 때문에 부족한 화력은 토치로 보충해 준다. 재료가 약간 탄 것에서 나오는 그 불맛이 나게끔 웍질을 하는 동시에 과하지 않게 지져준다.

 

토치로 볶아주기

돼지 내장이 충분히 익혀졌다 싶으면 마늘쫑을 넣고 센 불에 단시간 볶으며 전분물을 부어 농도를 맞춘다. 감칠맛을 좀 더 원하면 치킨스톡파우더를 전분물에 같이 풀어 넣어도 좋다. 농도를 맞출 때는 많이 묽은 전분물을 몇 번에 나누어 넣으며 볶아야 원하는 농도를 디테일하게 맞출 수 있다. 농도를 맞춤과 동시에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마무리한다.

 

마늘쫑 넣어 볶기

다 볶고 난 후 불을 끄고 참기름 몇 방울 넣고 한번 휘휘 저어주면 완성이다. 덮밥 그릇에 흰쌀밥을 놓고 내장 볶음을 얹어내어 맛있게 먹으면 된다.

 

그릇에 담아내기

달짝지근하게 뽑아진 고소한 양념과 아삭한 마늘종, 쫄깃한 돼지내장이 어울려 식감이 아주 좋다. 돼지내장볶음에 흰쌀밥을 따로 내면 그대로 고량주, 소주에 잘 어울리는 안주가 된다. 아마도 술이 절로 들어갈 거라 확신한다.

 

내장 덮밥, 생각보다 별미인 한그릇 요리

개인적으로 볶음 요리를 좋아한다. 단시간, 센 불에 볶은 내용물들의 식감과 양념의 맛도 좋지만, 볶을 때 웍질을 하는 즐거움이 있다. 웍에서 튀어 오르고 떨어지는 재료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마치 재료들이 맛있게 되려고 즐거워서 춤추는 것 같은 느낌이다. 중국뿐 아니라 세상엔 무수히 많은 볶음 요리들이 있는데, 리스트 정리를 잘해서 하나씩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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