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 #오코노미야키 #オコノミヤキ #베이컨 #양배추전 #일식 #집밥 #안주
시장에 가면 거대한 양배추가 한통에 3000원이다. 대형 마트에 가면 작은 양배추 1/4이 1500원. 큰 거 한통을 사자니 이걸 과연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거대한 양배추 앞에서 한참을 서있는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한 손 무겁게 들어 올린다. 양배추로 할 수 있는 요리가 뭐가 있을까. 한 번에 양배추를 많이 소비할 수 있는 맛있는 요리. 오코노미야키가 번뜩 떠오른다. 요즘 뭘 해 먹지라는 생각만 맨날 해서 그런지 '끄으응' 하다보면 풍선 터지듯 탁하며 뭘 해야 할지 생각이 난다. 사람이란 역시 신비의 동물.
오코노미야키하면 이자카야의 단골 메뉴가 아닐까. 대학생 때 이자카야를 간다는 건 생각보다 팬시한 일이었다. 그때 당시 한참 이자카야 술집이 급부상해서 유행이었는데, 일본식 주점 분위기에서 술을 한잔하는 건 내가 꼭 정말 대단한 어른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었던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대단한 음식들도 아니었고 맛있는 음식들도 아니었다. 그저 대학생들이 많이 찾고, 핫 했으며 나도 그들 틈에 끼어 유행을 만끽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없는 돈 긁어모아 먹었던 오코노미야키, 그때 그 이자카야에서 먹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다른 레벨의 오코노미야키를 만들어본다.
재료들 중 특별한게 두 가지가 있다. 일단 기본 재료 리스트를 나열해 보자면, 양배추, 대파, 달걀, 가다랑어포, 중력분 밀가루, 마, 혼다시, 돈가스소스, 케첩, 마요네즈, 파래가루 또는 파슬리 정도이고, 기호에 따라 준비할 건 후추나 소금, 기타 원하는 재료들을 준비하면 된다. 나는 기타 재료로써 베이컨을 준비했다. 여기서 특별한 재료 두 가지는 '혼다시'와 '마'이다. 첫 번째로 혼다시는 일본 조미료로 가쓰오부시를 메인으로 만든 조미료다. 미원과는 전혀 다른 맛이지만, 미원급의 사기 조미료라고 보면 된다. 미원의 원조라 불리는 아지노모토에서 만든 조미료다. 두 번째는 마. 오코노미야키에 이게 들어가면 엄청나게 맛있는 오코노미야키가 된다. 끈적한 마가 반죽의 모양도 잘 유지해 주고 밀가루와는 전혀 다른 맛이 난다.
베이컨은 만들 오코노미야키에 올릴 수 있는 사이즈로 썰어두고, 대파는 반으로 갈라 잘게 썰어준다. 양배추는 채를 써는데 기호에 따라 다지는 것처럼 써는 경우도 있다. 나는 채를 썰어서 하는게 오코노미야키의 모양도 잘 유지되고 식감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먹기에는 잘게 썰어주는 게 더 편할 듯.
마를 껍질을 벗겨 강판에 간다. 마를 껍질을 벗길때 주의해야 할 점은 손을 잡을 부분은 껍질을 벗기지 말고 남겨두는 게 좋다. 껍질을 벗긴 부분은 손으로 잡기가 힘들 정도로 많이 미끌미끌하기 때문에 강판에 밀기가 어렵다. 따로 즙을 내는 용도의 강판이 없어서 치즈강판을 사용했는데, 충분히 좋은 질감으로 갈아지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생 마는 피부에 닿으면 간지러울 수 있으니 꼭 비닐장갑이나 니트릴 장갑을 끼고 만지는 게 좋겠다.
잘 갈아진 마에 설탕과 혼다시를 넣고, 달걀과 중력분 밀가루를 넣는다. 굳이 밀가루가 아니더라도 부침가루로 해도 크게 상관 없다. 오코노미야키라고 해서 뭔가 특별하게 대단한 음식이 아니라, 그냥 양배추전이다. 일본의 맛을 내기 위한 포인트는 혼다시와 마 정도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거품기를 수동으로 잘 풀어준다. 갈아진 마가 생각보다 많이 끈적거리기 때문에 완전히 잘 섞일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많이 뻑뻑하다고 해서 물을 넣으면 물러지니 물을 넣지 말고 그대로 잘 섞어준다. 끈적끈적한 반죽은 양배추들끼리 잘 뭉쳐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팬 위에 구울 때도 모양을 유지하기 쉽다.
비닐장갑을 끼고 오코노미야키 반죽을 양배추에 부어 잘 섞어준다. 워낙 끈적끈적하다보니 손으로 반죽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양배추를 주물럭 거리며 충분히 잘 섞이도록 해주고, 대파를 넣어 한번 더 반죽하여 반죽을 완성해 준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온도를 올려둔 후 중간불로 내려준다. 양배추 반죽을 한주먹정도를 팬에 올려 원형으로 모양을 잡아준다. 적당한 크기의 후라이팬을 사용해서 오코노미야키 모양을 프라이팬의 사이즈에 맞추면 조금 더 수월하게 모양을 만들 수 있다. 손으로 한번 모양을 잡고 난 후 주걱으로 가장자리를 눌러주며 모양을 만들어준다.
두께가 있게끔 구울 것이기 때문에 뚜껑을 덮어 안쪽까지 익을 수 있도록 해준다. 뒤집기 전에 베이컨을 올려 주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원하는 재료를 올려준다. '오코노미'라는 뜻 자체가 취향이라는 뜻이고 '야키'는 구이라는 뜻으로 직역하면 취향에 맞게 구워먹는 것이라는 뜻이다. 결국 양배추는 바탕이고 취향대로 재료를 올려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어떤 재료를 올리든 크게 상관이 없다.
베이컨을 올린후 뒤집개로 오코노미야키를 뒤집어 준 후 다시 뚜껑을 덮어 안쪽까지 익을 수 있게 기다린다. 두께감이 있는 오코노미야키를 익힐 땐 기다리기 힘들더라도 중간불이나 중약불에서 천천히 지글지글 익혀주는 게 좋다.
아마도 한국사람에게 익숙한 오코노미야키는 오사카식일 것이다. 오코노미야키가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를 얘기하자면 오사카냐 히로시마냐 부터 따져야 하는데,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도 가타부타 말이 많은 모양이다. 그런 이유로 이 음식의 유래는 패스하고 지금 만들고 있는 이 오코노미야키만 보자면, 베이스반죽에 계란과 마를 넣어 부침개처럼 부쳐 원하는 재료를 얹는 방식인 오사카식으로 보면 되겠다.
예쁘게 구워진 오코노미야키 위에 소스를 바른다. 원래대로라면 소스도 제대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시간도 없고 귀찮다. 시판 소스들을 섞어서 간단하게 만들어본다. 돈가스 소스와 케첩만 섞어도 충분히 훌륭한 소스. 너무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지 말고 1큰술 정도로만 해서 넓게 펴 발라준다.
이제 마요네즈를 뿌릴 시간이다. 얇게 마요네즈를 뿌리고 싶은데 꼭지가 없다면 랩을 사용해서 만들면 된다. 랩을 3겹정도 겹쳐서 마요네즈 꼭지에 싸서 고무줄로 감은 후 가운데 작은 구멍을 하나 내주면 원하는 굵기로 뿌릴 수 있을 것이다. 원하는 만큼 마요네즈를 뿌려주고, 젓가락으로 그어주는데, 사실 가쓰오부시를 얹을 거라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저 젓가락으로 긋는 작업은 왠지 해줘야 할 것 기분이었을 뿐......
소스를 다 바르고 나면 가다랑어포를 한 줌 올려준다. 가다랑어포가 없다면 굳이 올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하지만 이자카야 음식의 분위기를 내려면 역시 따뜻한 오코노미야키 위에서 춤추는 가다랑어포를 보는 재미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파슬리를 올려 마무리. 사실 파래가루를 올리는 게 맞다. 그런데 파래가루는 흔치 않은 재료이니 가장 비슷한 느낌의 파슬리를 올렸을 뿐. 파슬리가 정석은 아니다. 구색을 위한 임시방편이었으니 참고 바란다.
마가 들어간 오코노미야키는 밀가루나 부침가루를 사용한 오코노미야키와는 맛 레벨 자체가 다르다. 밀가루나 부침가루로만 한 오코노미야키는 잘못 익히면 밀가루 맛이 나거나 반죽 맛이 나기 쉽다. 어정쩡한 이자카야에 가서 오코노미야키를 시키면 십중팔구는 그런 맛이다. 그런데 마가 들어간 반죽은 뭐랄까 밸런스가 좋다고 해야 하나, 나름대로 구황작물이라서 그런 건지 감자를 먹는 것 같은 질감을 살짝 가지고 있으면서 부드러움은 꼭 반죽 같은데 안 익은 반죽이 아니라 아주 적당히 잘 익은 느낌의 맛이다. 천천히 익히니 양배추에서도 수분이 나와 그렇게 푸석푸석하지 않고 약간의 채즙이 있는 오코노미야키가 된다. 달짝지근한 소스에 가다랑어포까지 얹어 한입 먹으면 아마도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올 것이다. 일본에 가본 적 없지만 일본에서 오코노미야키를 먹으면 이 맛일 거라고 확신한다.
@plates_n_crumbs
@ian_shin_kj